인터뷰 – 파블로(PABLO)

인터뷰 – 파블로(PABLO)
11/05/2017 WSB FARM SURF MAGAZINE

인터뷰 – 파블로(PABLO)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긴 배럴이 내려다보이는 산길을 걸어갔다. 세상에서 배럴을 가장 많이 타 본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무언가를 깨우친 그 사람. 무작정 배럴을 찾아 떠났고, 이 곳 배렌해변에서 몇 달씩 캠핑을 하며 25년이란 세월을 보낸 사람. 이곳은 산호가 아주 완벽하게 깔려있고 끊임없는 스웰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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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이름은 파블로. 진짜 이름은 폴 밀러(Paul Miller)이다. 파블로는 오랜 기간 동안 멕시코에서 서핑을 타면서 얻은 이름이다. 파블로는 남아메리카로 이주해 온 침례교 선교자 가족의 유일한 아들이다. 1980년 초 그가 완벽한 파도를 찾아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까지는 브라질에서 지냈다. 우연히 발견한 이곳엔 당시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의 서핑 이야기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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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 언덕 꼭대기에 있는 오두막에 가면 파블로를 만날 수 있다고 들었다. 언덕 전망대에 다다르자 기둥에 기대서 쉬고 있는 파블로와 그의 친구 데런(Darren)을 만날 수 있었다.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오후의 파도를 보며 쉬고 있었다. 파블로가 입고 있던 오닐 보드 쇼트는 잭 오닐(Jack O’Neill)이 직접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오래돼 보였다. 가죽 같아 보이는 등에는 리프에 긁힌 상처들이 있었다. 파블로는 대머리에 회색빛이 도는 수염을 길렀고, 다 부러져 가는 선글라스를 쓴 채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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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블로를 찾아 먼 산꼭대기까지 왔고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내 질문은 아주 다양했다. 배럴을 찾아 이곳에 살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배럴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했는지, 그럴만 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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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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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쉰다섯이다. 젊었을 땐 쉰 살이면 은퇴할 나이라고 농담하곤 했다. 벌써 그 나이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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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처음 롬복에 오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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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게 아마… (생각한 후) 1987 아니면 1988년이다. 배를 타고 몇몇 친구와 롬복으로 왔다. 그때는 롬복 내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건 엄청 힘든 일이었다. 우리가 탄 배는 아주 낡고 작았다. 2년 후 다시 돌아왔을 때는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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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롬복은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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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서핑 정보를 몇몇 친구하고만 공유했다. 요즘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다 알려지진 않았다. 멕시코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이곳에 대해 처음 들었다. 궁금해서 확인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땐 라인업에 아무도 없었다. 정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도가 마를 때까지 다 빨아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거의 다 말랐다. (사람이 많아서 기회가 없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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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처음와서 매너없이 서핑을 타는 애들을 혼내주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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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오래 전부터 있던 친구들은 매너가 참 좋았다. 나도 여기서 오랜 시간 동안 서핑을 했고, 내가 원하는 파도를 잡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서핑을 한 적은 없다. 새로 온 서퍼들에게 잘 대해준다. 하지만 뒤죽박죽 섞여서 무질서하게 타는 모습은 질색이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좋아했던 이곳의 모습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몇 명의 서퍼들과 탈 때는 좋은 파도가 와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방금 좋은 파도를 탄 후에 바로 다음 파도를 탈 필요가 있나? 하하하. 이건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요즘은 사람이 많아서 어떤 파도라도 잡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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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아진 것을 제외하고 가장 달라진 변화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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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 언덕이 나무로 빽빽하게 자라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었다. 지금 차들이 드나드는 찻길은 사람들만 지나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이었다. 일본인들이 저기 너머어 보이는 등대 쪽으로 대포를 옮기기 위해서 만들었다. 아직도 대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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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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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랑 장사를 한다. 여기서 만든 보석이나 장신구를 가져다가 텍사스에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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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으로 삶을 살아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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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있을 때 일년 반 정도 교직에 있었다. 이곳에 오기 시작하면서 브라질로 간 적은 없다. 처음 10년 정도는 보드 수리로 생계를 이었다. 먹고 살 돈은 충분히 벌었다. 누구나 보드가 망가지면 내게 가져왔다. 내가 유일하게 수리를 했다. 부자가 되진 못했지만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항상 인도네시아에 올 때보다 떠날 때 주머니가 더 두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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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난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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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이 들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멕시코 사람이었는데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멕시코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결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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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파도를 확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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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파도를 확인하긴 한다. 주로 파도가 언제 없는지를 확인한다. 그때 주로 장을 보러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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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퍼들이 소셜미디어를 많이 쓰는데 소셜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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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파도나 더 타고 싶다. 요즘 사람들과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난 어디에서 파도를 타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곳 파도를 물어오면 항상 썩었다고 말했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완전 정반대인 것 같다. 모든 정보를 SNS에 올리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바쁘면서 한편으로는 라인업에 사람이 많아 파도를 타기 힘들다고 불평한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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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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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침례교 선교사들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손자를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친구들도 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한두 명씩 이혼을 하더라. 그걸 보신 어머니는 “너는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벌써 알고 있었구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을 이해하고 잔소리하지 않으신다. 난 누이만 두명이고, 관계가 아주 좋다. 집으로 갈 때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가족들을 즐겁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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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에 여기는 어떻게 변할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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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질문이다. 지금 발리는 초과 상태고 롬복은 지금 개발 초기 단계다. 점점 사람들이 몰린다. 작년에 꾸따와 롬복을 잇는 새로운 항공편이 생겼다. 그리고 마카크(Makaki)라는 해변이 있는데 정부가 개발하려고 거기 있는 사람들을 다 쫓아냈다. 롬복에는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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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 네이트 로렌스 & 하미쉬 험프리

Translation : 김건표

Written by : 리오 맥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