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끌림
28/03/2016 WSB FARM SURF MAGAZINE

끌림

스스로에게 ‘삶에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 열정의 온도가 누군가보다 감히 뜨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항상 미적지근했고 물음에 대한 답은 물음표로만 남았다. 현실은 어두웠고 장래는 암담했다. 언제나 무언가를 갈망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방해받는 것투성였다. 서핑을 경험하기 전, 내 모습은 이렇게 못생겼다.

jungmun_sea fog copy<안개 낀 중문해수욕장> 

젊은이들에게 유행처럼 번지던 제주도 자전거 일주.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동요되어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얻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찾은 제주도 중문 해수욕장. 그곳에는 얼굴이 검게 익은 청년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물에 젖어서 헝클어진 머리에 해녀들처럼 검은 고무 옷을 입었고 입에서 내뱉는 어투에는 자유로움이 묻어나왔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히피족 같았다. 내 눈은 그들에 대한 신선함으로 가득 찼다.

jeju copy<중문 듀크 포인트>

다니던 회사를 옮기기 위해 사직을 하고 시간상으로 여유가 생겼다. 혼자서 하는 여행에 제법 익숙해져서 접근이 쉬운 태국 푸껫으로 무계획 여행길에 올랐다. 남서부 해안에 있는 까따비치 근처에 숙소를 잡고 신이 난 발걸음으로 해변을 향했다. 드넓은 수평선에 해가 맞닿기 직전, 하늘은 붉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먼 바다부터 힘차게 휘몰아치던 파도 위에서 서퍼들을 보았다. 해가 수평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바다에 두었다. 다음날, 다이빙 전문 용품 가게 한편에 먼지 쌓인 숏보드를 구입해 쭈뼛쭈뼛 바다로 향했다. 그렇게 푸껫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에 없던 필리핀 샤르가오 섬으로 서핑 여행길에 올랐다. 나는 서핑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foot copy<남쪽 소년>

bali copy<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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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파도가 있는 평일은 지옥 같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업무를 어떻게 시작하고 끝맺었는지 온종일 파도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금요일이 되면 회사 서류로 가득 찬 가방이 아닌 서프보드 백을 손에 들고 출근할 만큼 나는 서핑에 매료되었다. 오후 6시 정각, 일을 마치는 대로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전국 어디든 파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주말을 보내기 바빴다.

gosung copy<고성>

gosung2 copy<고성>

월요일 오전 일터로 출근해야 하는 나의 발걸음은 회사가 아닌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단지 파도가 좋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핸드폰을 꺼두고 바다에서 서핑을 즐겼다. 회사를 그만둘 각오로 부서 상관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몇날 며칠 바다에서 서핑을 즐겼다. 그리고 복귀한 회사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는커녕 컴퓨터 모니터에 주간 파도 차트를 띄워놓고 업무일지 대신 사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설렘에 앞서 웃고 있었다.

haeundae copy<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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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본격적으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백패킹 가방에는 1인 텐트, 코펠과 반합, 필수 식량, 가볍고 따뜻한 옷가지 몇 벌과 가장 중요한 서프보드를 챙겼다. 양양 38 해변을 시작으로 포항, 부산, 제주까지 가보길 원했다. 해변에서 먹는 간소한 음식이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었다. 밤에는 바람에 텐트가 나부끼는 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잠을 청했다.

yangyang copy<양양>

songjung copy<송정>

부산 송정 해변에서 지낸 지 5일째 되던 날 계획에 없던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누군가의 민원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구청 직원들로부터 텐트 철수 명령이 떨어졌고 그 모습을 지켜본 부산 토박이 서퍼에 의해 앞으로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받았다. 운이 좋았다.

songjung6 copy<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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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과거의 회사원 시절과 다름없이 주간 파도 차트에 정신을 쏟고, 파도에 갈증을 느끼고, 끊임없이 바다로 향한다. 육지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까지 이사를 감행 했는데도 욕심은 끝이 없다. 인간관계는 확연히 축소되었고 경제 활동은 제한되었다. 원하던 자유를 얻고자 소홀해져 멀어진 것 또한 많다. 밀려오는 파도가 내 삶에 계속해서 나를 덮치면 온몸으로 받고, 파도가 지나가면 잔잔해진 대로 ‘청춘’을 즐기기로 했다. 

bali<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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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 이병률, 끌림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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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 Words  Jeonghyuk Seo
Reviser Jaewi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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