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IMPRESSION

FIRST IMPRESSION
01/10/2015 WSB FARM SURF MAGAZINE

FIRST IMPRESSION

3년 전 여름, 나는 서핑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될 기회가 있었다. 해양 문화를 기반으로 한 편집숍, 안티도트(ANTIDOTE) 홍대점을 이끌던 허석환을 따라 양양에 갔을 때였다. 바다에도 등고선이 있어서 도표를 보고 여행할 날짜와 방향을 정한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서핑은 생각보다 곱절은 어려웠고 서퍼라고 부르는 이들에게서는 왠지 모를 냉소가 느껴졌다. 서핑은 단순히 파도를 타는 행위가 아니라 음악, 패션, 영상, 그림 등 매우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모든 공간과 시간이 파도로 귀결되는 사람들. 그들과 대화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고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로컬(Local)이란 단어는 이방인을 향한 굳건한 방어벽 같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모래를 뒤집어 쓴 서핑숍에서는 쉬지 않고 이국적인 멜로디와 젖은 나무 향기가 흘렀다. 파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너무 깊어서 초점이 없다기보다는 마치 불빛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동이 트는 아침이나 어스름이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기에 적합한 눈꺼풀의 간격과 동공의 크기. 그러나 며칠 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검은 살결만큼 소탈하고 인정 많은 형, 누나, 동생들일 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든 서핑이 미친 듯이 좋아서든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살자고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왔다.

서퍼들은 간혹 그들 자신을 음악에 비유하곤 한다. 롱보드는 재즈의 선율을 걷고, 숏보드는 힙합의 16비트 위를 오르내린다. 양양에서 만난 로컬 서퍼들은 지금 막 악보 위에서 내려온 음표처럼 가볍게 인사했다. 하나같이 까맣고 작은 근육이 도드라진 몸들. 파도를 부유해온 어깨와 무릎 사이에 리듬이 착착 감겨 있다. 그러고 보면 로컬이란 단어는 배타적인 의미보다는 바다라는 경외의 대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신념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자부심의 의미일 것이다. 이방인은 지면이 바위인지 모래인지, 조류는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어느 부분에서 파도가 시작되는지 알기 위해 로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바다는 매우 거대하고 변화무쌍하며 한눈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유학할 때 이런 광고를 봤어. 한 청년이 서핑 장비를 챙겨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힘겹게 바다에 도착했는데 파도가 전혀 없는 거야. 한참 동안 바다를 지켜보다가 결국엔 즐거운 표정으로 서프보드에 올라타면서 마무리 되는 영상이야. 우리나라에서 외국만큼 양질의 파도를 만날 수 없지만 생활 속에서 서핑을 즐긴다는 건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어.” 허석환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 느릿느릿 몰려오는 파도, 서핑숍에서 피어오르는 향의 달콤함, 해풍과 모래 그리고 이 시간을 사랑해야지.

나는 괴롭기만 하던 첫 서핑의 기억 이후, 매달 한두 번씩 양양을 다시 찾게 되었다. 해외 출장 중에도 유명한 서핑 스폿이 있다고 하면 괜스레 설레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 고성 봉수대해변에서 태풍 파도에 와이프아웃(Wipe Out) 당하면서 서프보드가 두 동강 나고 말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새로운 서프보드를 구하는 중이다. 지난 해 여름 서핑의 매력에 한참 빠져들어 있을 때 서핑과 야영을 결합한 여행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비록 서핑은 서툰 실력이지만 캠핑이라면 자신이 있다. 대부분의 서퍼들은 각 서핑 포인트에 자리 잡은 서핑숍과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해 여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해안, 부산, 제주도, 만리포 해변에 운영하는 서핑숍은 숙박 요금이 매우 저렴한 데다 왁스나 선밤 같은 소품들도 판매한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치킨(동호해변 서프클럽 젯시티), 햄버거(만리포해변 MLP서프)처럼 서퍼들에게 잘 어울리는 요리도 주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서핑과 야영을 결합한 형태에 관심을 가진다. 나무에 서프보드를 기대어놓고 캠프파이어에 웨트슈트를 말리는 순간은 바다와 숲의 행운이 온몸에 깃드는 느낌. 미국의 자연주의자이자 수필가인 존 버로스(John Burroughs)는 <단풍나무 아래서(Under the Maples)>라는 에세이 속에서 “결국 불편함이야말로 야외에 나온 캠퍼가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또다시 맞닥뜨리기 위해 비와 추위와 연기와 모기와 흑파리와 불면의 밤을 기꺼이 감내한다”고 역설했다. 서핑과 캠핑 모두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와 단련된 육체를 통해 바다와 숲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서핑과 캠핑은 서로 닮아 있기도 하다. 또 캠퍼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텐트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설치하는 습관처럼 서퍼들 사이에도 파도 위에서의 에티켓이 있다. 이런 규칙들은 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서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깊어가는 여름밤 WSB FARM 서핑 웹 매거진의 디렉터 한동훈에게 전화를 걸어 강릉의 서핑 포인트를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한동훈은 연중 추운 시기는 발리에서 보내며 현지 전통 방식으로 의류와 액세서리를 만들어 오다 올해 국내 최초로 영상을 기반으로 한 서핑 웹 매거진을 론칭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위트 넘치는 이미지로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 디렌(DIREN), 핸드 셰이핑으로 제작되는 우말론 서프보드의 창립자 메릭 러스티아(Merrick Rustia), 서프보드에 바다와 해양 생물을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는 서퍼인 하와이 출신 아티스트 이아 에커맨(Ea Eckerman), 바이크 리스토어 숍 바이크랩(BIKE LAB)의 유도훈, 아내이자 순수 미술가인 사비나(Sabina), 보디서퍼이자 서핑 전문 영상 디렉터 장래홍, 여전히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엄준식 등이다. 아마도 한동훈은 우리나라에서 영상, 아트워크, 브랜딩, 바이크 리스토어 등 서프 문화를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크리에이터이지 않을까? 그는 마치 서핑이 파도처럼 투과하고 부유하고 사라지며 무한대로 늘어나는 유연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서핑과 야영 또한 미학적인 접근과 심미안이 필요한 시대이며 자연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성찰이 있다. 그리고 WSB FARM MAG은 올해 아웃도어 영역에서 가장 고무적인 움직임 중 하나였다. 산과 바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지킬 수 있다. 그 속에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이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내는 것이다.

11. 파도차트가 이틀 정도 뒤로 밀리면서 예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롱보더들이 탈만한 파도는 꾸준히 들어오던 첫날.

22. 지난 해 WSB FARM 매거진의 한동훈과 깊은 인연으로 이어졌던 며칠. 이후로 우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33. 한동훈은 자타가 공인하는 서핑 실력을 갖추었지만 그의 진가는 서핑을 통해 만들어나가는 아트워크와 브랜딩에 있다.

44. 강릉은 수심이 깊어 비교적 크고 높은 파도가 들어올 때 서핑을 하기에 적합하다.

55. 주변을 돌며 솔방울을 채집해 불을 피웠다. 비를 맞은 상태라 파이어 스타터 없이 캠프파이어를 하긴 조금 어렵다. 인스타 파이어는 유해 물질이 없으면서도 지금껏 활용해 본 제품 중 가장 화력이 좋아서 애용한다. INSTA FIRE

66. 늦은 밤 캠프사이트의 풍경. 널어둔 웨트슈트와 모자가 잘 말라간다.

77. <고아웃> 코리아와 지프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루비콘 랭글러와 바이크. 바이크는 리페어 숍 바이크랩(BIKE LAB)에서 리스토어한 것들이다.

88. 오징어 배가 떠오르자 수평선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빛이 들어온다. 저 불빛을 보며 저녁이 왔다는 걸 알곤 했다. 우리가 사용했던 타프는 두 갈래로 나뉘어서 목적에 맞게 세팅할 수 있다. TICLA

99. 소프트랙을 이용해 자동차 루프에 서프보드를 실었다.

1010. WSB FARM 쇼룸이 위치한 강릉의 코지 카페에서 경포대를 지나 사천 해변까지 바이크로 라이딩.

1111. 도로를 달리는 동안 해가 떴다.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뒤였다. 가까운 서핑 포인트로 떠날 때 부피가 작은 의자, 테이블 등을 넣어두기 좋은 배낭. MYSTERY RANCH

1212. 다음 기회엔 서프보드를 실을 수 있는 바이크와 백패킹 장비만으로 동해안의 서핑 포인트를 여행해보고 싶다.

1313. 비와 흙탕물에 젖은 옷을 말리고 캠프사이트를 설치했다.

1414. 바닥이 돌로 이루어진 해변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리프 슈즈. 해변과 캠프사이트를 오가기 편해서 한번 신으면 벗기 힘든 아이템. VIBRAM FIVE FINGERS

1515. 해변까지 떠내려 온 부표와 바다로 들어가는 남자.

1616. 3일 동안 신나게 타고 다녔던 바이크. 바이크 리스토어의 세계에도 빠져보고 싶다!

17_317. 1) 지프와 <고아웃> 코리아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자동차. 오른편은 통나무, 왼편은 카무플라주를 배경으로 수상 레저 활동을 형상화했다. JEEP×GO OUT KOREA 2) <고아웃> 코리아의 마스코트 곰 엠블럼과 얼라이트의 지오 프린트를 활용해 디자인한 맨티스2 체어. ALITE×GO OUT KOREA 3) 바이챈스 멤버인 이원택이 헐값에 내놓은 9.2ft 롱보드를 단숨에 구입했다. 1개의 센터 핀과 4개의 사이드 핀이 있는 퍼포먼스 스타일. DUAL SHIFT 4) 파도가 없는 날이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해변 가장자리에 난 도로를 따라 크루징하기에 적합한 롱보드. GOLD COAST 5) 재미교포인 지인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동훈에게 선물해 준 카빙보드. 서핑을 할 때의 움직임과 유사해 연습에 많은 도움을 준다. ORIGINAL 6) 어반 스테레오 백(Urban Stereo Bag)을 지향하는 피델리티의 크로스백. 가방에 스피커가 내장돼 MP3 또는 핸드폰을 연결하면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FYDELITY 7, 8) 2mm 메모리폼이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보드백. 안감을 방수 소재로 마감해 보드 왁스가 눌어붙거나 비가 새지 않는다. 다양한 패턴과 길이에 맞는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WSB FARM 9) 풋펌프를 밟아서 수압을 끓어올리는 구조의 포터블 샤워기. 11리터의 많은 양을 보관할 수 있어 야영용 식기를 세척하는 데도 용이하다. NEMO 10) 바다와 해양생물을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이자 우말론 보드의 창립자인 이아 에커맨(Ea Eckerman)이 서핑보드를 캔버스 삼아 작업한 스페셜 에디션. UMALON 11) 시티백(CITY100) 초기 모델을 바이크랩(BIKE LAB) 유도훈이 리스토어한 제품. 아내이자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사비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WSB FARM×SABINA×BIKE LAB 12) 한동훈이 발리에서 직접 만들어온 전용 헬멧. WSB FARM 13) 야영과 관련된 짐의 부피를 가능한 최소화하고 싶어 ‘조르’ 매트리스를 선택했다. 내구성, 보온성, 휴대성까지 모든 부분에서 가장 적합한 3계절 매트리스다. NEMO 14) 울트라 라이트 시리즈로 출시된 침낭. 매우 가벼우면서도 복원력이 뛰어나 한겨울이 아니면 이것 하나로 여행하는 편이다. GRANITE GEAR

18_118. 강릉 사천해변으로 진입하는 도로. 양쪽으로 소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19_119.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 숲과 바다의 행운이 온몸에 깃드는 기분.

2020. 이때 사용했던 듀얼시프트의 서프보드는 얼마 전 태풍 파도에 와이프아웃 당하면서 두 동강 나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보드로 우말론의 펀보드 스타일을 고려 중이다.

2121. 한동훈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WSB FARM 매거진 온라인 사이트를 둘러보면 멋진 감성을 지닌 영상 콘텐츠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22_122. 파도가 없는 날도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서핑, 캠핑의 조합.

2323. 고요한 바다 위에 앉아서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 다음에는 더 멋진 서프 트립을 소개하고 싶다.

Photographs IFORD Studio Lee Sung Hun
Writing <GO OUT> KOREA Editor Lee Jae W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