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FROM CHIBA

LETTERS FROM CHIBA
11/10/2016 WSB FARM SURF MAGAZINE

LETTERS FROM CHIBA

JP1847< The Great Wave off Kanazawa by Katsushika Hokus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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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Great Wave off Kanaza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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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을 등지고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19세기 일본화가 호쿠사이가 그린 작품”
그때는 서핑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때도 파도를 보며 영감을 얻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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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열심히 일을 하고 주말에 서핑을 하는 주말 서퍼들에게 해외로 떠나는 서프 트립은 참 부담스럽다. 동남아 해외 여행이야 3박4일, 4박5일씩 짧게 다녀올 수 있지만 시골로 들어가서도 다양한 포인트를 다녀봐야 하는 서프 트립은 조금 더 긴 일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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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많은 서퍼들이 추석이나 설날 같은 연휴를 끼고 서프 트립을 떠나는 경우가 있는데 가족들과 조상님께 여간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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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주말 서퍼다. 2년 전 추석 연휴에 처음 서핑을 접하고는 연휴 때마다 발리, 대만, 미국으로 서프 트립을 떠나왔다. 정말이지 조상님 볼 낯짝이 닳아 없어졌다. 무거운 마음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 가족들에게 썩 괜찮은 명절 선물을 전하고 이번 추석 연휴에도 다시금 비행기를 탔다. 이번 서프 트립은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의 치바 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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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82%ac%ec%a7%842s__38207505< 나리타 공항에서 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스폿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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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는 도쿄에서 1시간 반 거리고, 남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경기도 크기의 큰 도시고 수많은 서핑포인트가 있다. 서핑을 하는 사람이라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서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사실을 알텐데 바로 그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장소가 이곳 치바(이치노미아 포인트, 이즈미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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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82%ac%ec%a7%84328108eab-08d7-41de-b6c5-ebe3476c33e7 < 이치노미야에 위치한 서프숍. 식당과 주점마다 포스터가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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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M SURFER’S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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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 근처에서 렌트한 밴 차량에 서핑보드를 싣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출발 전에 일본 치바 서핑에 대한 정보는 모조리 수집했다고 생각했지만 놓친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톨게이트 요금이었다. 일본의 톨비는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들뜬 마음에 탄 도쿄만 바다 밑을 가로지르는 아쿠아라인 터널이 워낙 비싸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서울에서 양양을 갈 때보다 훨씬 많은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니 일본에 대중교통이 왜 그렇게 잘 되어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알아보면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도 치바로 가는 길이 있으니 일본으로 트립을 가는 서퍼들은 로컬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을 것) 자정이 넘은 시간 훨씬 가벼워진 지갑과 함께 이치노미야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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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82%ac%ec%a7%8458c5b598c-6425-47d7-b802-6eadd99f4941_0< 솔티펠리칸 게스트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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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이 되면 바람이 강해진다는 차트에 따라 해 뜰 무렵 바다로 향했다. 구글맵의 도움을 받아 처음 향한 이치노미야 구주쿠리 해변은 우리가 생각하던 해변과는 조금 달랐다. 죽도해변이나 인구해변, 해운대, 송정해변과 비교해 엄청나게 넓은 바다가 있었고 각각의 방파제를 기점으로 포인트가 나누어져 있었다. 때문에 주차장이 붙어 있는 메인 포인트를 기준으로 좌측 해변, 우측 해변 이런 식으로 포인트를 구분해야 했다.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가 인구해변과 같이 아담한 곳도 있었고, 남애해변처럼 광활한 곳도 있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포인트마다 조금씩 다른 파도가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메인 포인트라고 부른 곳에는 멜로우하고 글라시한 파도가 들어오고 있었고 많은 일본 서퍼들이 라인업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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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주차료 500엔을 지불하고 라인업으로 향했다. 인구해변 정도 크기에 40~50명의 서퍼가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한다는 일본 사람들의 성격이 라인업에서도 나타나는 걸까? 꽤나 많은 사람이 라인업에 있음에도 대화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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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오면 다들 피크로 달려간다. 누군가 파도를 잡으면 소리치지 않아도 자기 보드를 뺀다. 드롭이나 스네이킹을 하는 서퍼는 정말 보기 드물었고 파도를 타고 돌아오는 서퍼도, 라인업에서 그를 다시 맞이하는 서퍼들도 한마디 없이 다음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극도로 조용한 라인업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나도 곧 분위기에 흡수되어 조금 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파도를 기다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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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FER’S CONVIENCE 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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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서핑트립을 떠나기로 결심할 때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올림픽에서 첫 번째로 서핑 경기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고, 발리나 미국, 호주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항공권도 한 몫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의 서핑문화와 인프라가 우리나라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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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앞선 서핑문화를 몸소 느끼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프 포인트에 위치한 편의점에서는 리시(Leash), 서프이어(Surfears), 번들핀(Fins), 왁스(Wax)들을 마치 해운대 앞 슈퍼에서 판매하는 튜브처럼 진열해두었다. 서핑을 즐기다 그것들이 필요한 서퍼들은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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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품질의 장비들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편의점에서 만난 서핑 장비들은 (파도가 좋은데 리시가 끊어지거나 왁스가 덜 발리는 등) 다급한 서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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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82%ac%ec%a7%8491362c7d8-0741-4cf2-ba95-1304388ed2f5< 무라사키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무라사키는 10월 7일에 재오픈한다고 한다.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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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바탕에 보라색 글씨로 ‘무라사키’(Murasaki)’라고 적힌 간판이나 로고는 서퍼라면 꽤 익숙할 것이다. 바로 일본의 대표 스포츠 편집숍인 무라사키 스포츠의 로고다. 한국에도 무라사키 스포츠 매장이 있고 국내에서 열리는 여러 서핑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대회 때마다 비치타월을 많이 후원해서 많은 서퍼들이 무라사키 타월을 쓰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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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노미야에도 무라사키 매장이 있는데, 일본 최대의 스포츠 편집숍인 만큼 다양한 서프 브랜드의 의류와 서프보드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TCSS>(The Critical Slide Society), <DEUS>(deus ex machina), <캡틴핀>(captain fin co.)에서 나오는 옷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브랜드들의 제품이 (그것도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제품들이 가득) 많아서 예상치 못한 쇼핑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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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 있는 제품들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을 때는 꽤 많은 동료 서퍼들이 사다 달라는 문자를 보내줘 내심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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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외에도 많은 스포츠숍들이 이치노미야 도로를 따라 자리하고 있다. PATAGONIA CHIBA 와 같은 친근한 브랜드의 매장부터 SEQUENCE나 HIC처럼 조금 생소한 브랜드까지 크고 작은 숍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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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숍들이 해안이 아닌 도로를 따라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지진과 태풍이 잦기 때문에 해안도로는 거의 만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나 동해안 같이 바다(파도)를 보며 달릴 수 있는 길은 트립 내내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여러 포인트의 파도를 체크하기 위해서는 차를 적당한 위치에 세우고 해변 입구를 찾아(이게 어렵다) 한참 걸어 들어가야 했다. 이러한 절차는 약간 수고스러웠지만 파도를 확인하기 전까지 설레는 마음을 더 길게 지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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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82%ac%ec%a7%841228377853-ac9f-49fe-95de-49f9f6bc3317< 차를 세우고 이런 길을 따라 걸어가면 해변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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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STAY SA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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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의 말미, 일정이 달랐던 일행이 밴 차량을 가지고 먼저 일본을 떠났다. “내 걱정은 말고. 공항까지 조심히 가 운전 조심히 하고!” 쿨하게 뱉은 말이었지만, 막상 빈 몸이 되니 내 보드를 들고 어떻게 해변에 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도 지내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솔티펠리칸)에서 보드랙이 설치된 자전거를 빌려줘 남은 기간 동안 내 몸과 보드를 작은 자전거에 맡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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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가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했던가? 페달을 밟고 포인트로 이동하는 기분은 기대 이상 좋았다. 포인트로 이동하는 시간은 차로 이동할 때보다 몇 배나 늘었지만, 천천히 바다로 향하면서 느끼는 바다내음이 특히 좋았다. 차로 이동 할 때는 찾지 못했던 포인트들도 속속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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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시골길을 40분이나 달려 도착한 이 포인트는(해변 이름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바다 한가운데에 방파제가 올라와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파도가 방파제를 그대로 통과하면서 좋은 파도가 만들어졌다. 드넓은 태평양 바다에 수많은 포인트가 있었는데 차량의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좋은 파도가 들어오는 포인트가 많았다. 그런 포인트의 라인업에는 나를 포함해 5명 이내의 서퍼만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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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라인업에 사람이 많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파도 앞에서 자만하지 않고 양보할수록 나에게 기회가 돌아왔고, 내가 라이딩을 할 때 로컬 서퍼들은 묵묵히 보드를 빼주었다. 테이크오프 전에 로컬 서퍼들과 눈을 마주치면 그들이 “네 차례야” 라고 넌지시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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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향하기 전에는 치바가 로컬리즘이 굉장히 강한 동네라고 들었다. 그러나 에티켓을 잘 지키고 겸손한 마음으로 라인업에서 파도를 맞이한다면 로컬 서퍼들도 충분히 이방인을 존중해주고 다 함께 즐거운 서프트립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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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을 시작한지 이제 2년 가까이 되었다. 발리, 대만, 미국에 이어 4번째 서프트립을 다녀왔다. 아직도 나 스스로를 서퍼라고 말하기는 부족하고, ‘과연 무엇이 서퍼를 만드는 걸까?’라고 고민하던 찰나에 다녀온 일본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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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역시 누구도 어떻게 서퍼가 되는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파도 앞에서 차분하고 겸손한 이치노미야 로컬들의 모습으로부터 서퍼가 되는 조각 중 일부를 가져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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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겨울이 다가오고 한국의 많은 서퍼들이 해외로 트립을 떠나겠지? 발리, 호주, 미국, 대만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장 가깝고도 가장 새로웠던 일본의 치바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 다른 곳보다는 춥겠지만, 나는 겨울에 다시 치바로 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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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핑을 왜 시작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준 치바 서프트립. 그 시간은 내가 단순히 재미만으로 서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재미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서핑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것이다. 스킬을 쌓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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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갖고 가까운 곳부터 둘러보자.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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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까지 맛있는 밥을 해주신 솔티펠리칸 게스트하우스의 마사상과 지타 누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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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류장한